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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난 이후의 마음, 상담은 왜 필요할까? 

우리는 뉴스 속 재난을 볼 때 종종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는 말에 안도한다. 하지만 실제로 재난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피해, 즉 정신적 충격심리적 붕괴가 오래도록 남는다. 폭우나 지진, 대형 화재와 같은 물리적 재난뿐 아니라, 사고나 갑작스러운 사망 등으로 인한 정서적 재난도 포함된다. 피해자는 물론,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 구조대원, 그리고 가족들까지도 깊은 충격을 받는다. 이들은 흔히 불면, 악몽, 분노, 무기력, 집중력 저하, 죄책감과 같은 다양한 반응을 경험하게 되며, 때로는 그 고통이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지속된다.

이러한 상태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러한 심리적 고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팔이 부러지면 깁스를 하고 병원에 가지만, 마음이 부러진 사람은 대체로 조용히 고통을 감춘다. 여기서 전문가의 심리상담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진다. 상담은 단지 말을 들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트라우마를 해석하고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재난 이후 48~72시간 이내의 초기 대응이 장기적인 회복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피해자 및 가족들에게 심리상담을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당시 일부 피해자 가족은 상담을 받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고, 이후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이어졌다는 보고도 있었다. 반면, 상담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외부와 소통할 수 있었던 이들은 일상 복귀가 훨씬 수월했다. 이처럼 재난 후 상담은 선택이 아닌 ‘회복의 필수 과정’이다. 문제는 그 상담을 어떤 방식으로 받을 것인가에 있다. 요즘은 다양한 상담 방식이 존재하는 만큼, 자신에게 맞는 회복 방식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심리 전문가들이 말하는 재난 후 상담의 ‘최적 방식’

 

2. 집단상담의 장점: “같은 경험, 서로를 치유하다” (키워드: 집단상담, 공감, 회복 공동체)

심리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상담 방식 중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집단상담이다. 특히 대규모 재난, 즉 많은 이들이 동시에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심리 회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집단상담은 동일한 사건을 경험한 이들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나누는 과정이다. 이때 발생하는 상호 공감은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상담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은 그들은, 어느새 서로의 치유자가 되어간다.

이러한 공감 기반 회복은 단순한 감정 나눔을 넘어선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같은 경험을 한 이들과 ‘공동체’를 이루는 순간 자존감과 안전감이 상승한다. 예를 들어 2016년 경주 지진 당시, 지역 주민 중 일부는 마을 단위로 구성된 집단상담에 참여하며, 밤마다 이어지는 불안한 잠을 견뎌냈다. 한 중년 여성은 “혼자 집에 있으면 지진이 또 올까 불안했는데, 같은 동네 사람들이랑 모여서 이야기하니 덜 무서웠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울고 웃으며 나누는 경험은, 언어가 아닌 정서로 이어지는 깊은 연결감을 만든다.

또한 집단상담은 접근성과 효율성 면에서도 장점이 많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전문가 수는 제한적이지만, 피해자는 많다. 이런 상황에서 상담자가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상담으로 만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반면, 집단상담은 한 명의 전문가가 5~10명 이상을 동시에 도울 수 있다. 이는 심리적 응급처치의 관점에서 빠르고 넓은 개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상담 초기에는 감정 정리와 상황 공유가 중요하기 때문에, 심층 상담보다는 ‘감정 표현과 수용’에 초점이 맞춰진 집단상담이 효과적이다.

물론, 집단상담의 한계도 존재한다. 내성적이거나, 말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고, 이야기 도중에 다른 사람의 경험이 트리거(재자극)가 되어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심리 전문가들은 집단상담을 단독 치료가 아닌 회복의 첫걸음, 즉 ‘심리적 준비운동’ 정도로 인식한다. 이후 개인의 상태에 따라 1:1 상담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집단상담의 핵심은 ‘공감의 힘’이다. 같은 고통을 겪은 이들과 함께한다는 경험은, 재난을 혼자 견뎌야 했던 외로움을 덜어주고, 삶의 회복 가능성을 열어주는 강력한 심리적 자원이 된다.

3. 개인상담의 힘: “깊이 있는 회복, 나만의 속도”

집단상담이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초기 치유에 효과적이라면, 개인상담은 더 깊은 감정과 문제를 다루는 데 특화된 방식이다.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복합 트라우마, 2차 피해를 겪은 이들에겐 1:1 맞춤형 상담이 거의 유일한 회복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심리 전문가들은 반복적인 악몽, 감정의 둔감화, 극도의 회피 반응, 자살 사고가 나타나는 경우 즉시 개인상담을 통해 전문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상담의 장점은 명확하다. 무엇보다도 심리적 안전감이 높다는 점이다. 상담자는 내담자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에, 내담자는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타인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성폭력 생존자, 장애인, 아동청소년, 고령자처럼 심리 표현이 제한되거나 신뢰 형성이 중요한 대상에게는 개인상담이 필수적이다. 또한 개인의 성격, 삶의 맥락, 재난 경험의 종류에 따라 상담의 방식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맞춤형 심리치료’가 가능하다.

상담 기법도 매우 다양하다. 인지행동치료(CBT)는 사고 패턴을 점검하고 비합리적 신념을 재구성해 현실 적응력을 높이며,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은 외상 기억을 처리하는 데 효과적인 기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정서중심치료, 미술치료, 정신역동적 접근까지 다양한 이론적 틀이 활용된다. 상담사는 내담자의 상태와 니즈에 따라 가장 적절한 접근을 선택해 사용하며, 때로는 가족이나 보호자와의 동시 개입(Family Therapy)도 병행한다.

중요한 점은 개인상담은 단기 개입보다는 중장기 개입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심층적인 감정 다루기, 삶의 재정비, 자기 수용 과정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때문에 상담자는 내담자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긴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가 된다. 특히 재난 이후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생존자들은 상담자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그 감정을 정리하고 재구성하는 데 큰 도움을 받는다.

따라서 개인상담은 집단상담 이후의 2차 회복 단계로 구성되기도 한다. 초기에는 집단상담으로 심리적 안정을 찾고, 이후 개인의 트라우마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이는 WHO와 국제재난심리지원센터(IASC)의 권고에도 포함된 전략이며, 많은 국가의 재난 대응 체계에서도 ‘집단상담 → 개인상담’으로 이어지는 다층적 접근이 채택되고 있다.

 

4. 전문가가 추천하는 ‘상담 방식의 조합’

상담은 정답이 있는 공식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심리 전문가들은 한 가지 방식만 고수하기보다는, 집단상담과 개인상담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혼합형 접근법’을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권장한다. 이는 단순히 두 방식을 함께 쓴다는 의미를 넘어, 피해자의 회복 단계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혼합형 상담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재난 직후 심리적 혼란 상태에서는 빠르고 광범위한 안정화가 중요하다. 이때 집단상담을 통해 초기 정서 지원을 제공하고, 기본적인 트라우마 반응에 대해 교육하며, 공감 기반의 커뮤니티 회복을 도모한다.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고, 개인별로 나타나는 증상과 회복 속도를 평가해 심층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개인상담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효율성과 개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실제로 이 혼합형 상담은 WHO의 ‘MHPSS 가이드라인(심리사회적 지원 지침)’**과 국제 NGO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회복 프로토콜에도 적용되고 있다. UNHCR, 레드크로스, 세이브더칠드런 등은 모두 ‘집단 중심의 초기 개입 → 개인 중심의 심화 지원 → 지역 사회 기반 회복’이라는 삼단계 모델을 기본 구조로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 치료 차원을 넘어 회복 이후 재적응까지 이어지는 심리적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내 사례에서도 이 조합형 방식의 효과는 이미 입증되고 있다. 예컨대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일부 지역은 마을 회관에서 심리치유 캠프를 열고, 그 안에서 집단 워크숍을 진행한 후 별도의 방에서 개인상담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이중 상담을 받은 사람들은 집단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개인상담에서 토로하고, 그 이후 회복 속도나 일상 복귀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분석이 있다. 또한 이러한 혼합형 방식은 재난 후 생존자뿐 아니라 그 가족, 구조자, 그리고 지역 주민 전체의 심리회복에도 확산 효과를 갖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담의 ‘형태’보다는 그 사람이 상담을 시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상담은 강요가 아닌 선택이어야 하며, 그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전문가와 정책 담당자의 역할이다. 누군가는 집단에서 치유를 경험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용한 개인상담실에서 안정을 찾는다. 이 둘을 분리해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적인 ‘회복 여정’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재난심리 지원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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